신승오는 ㈜KH바텍에서 운영하는 비영리 공간인 페리지갤러리의 디렉터이다. 현재에는 40대 이상의 중견 작가들의 개인전 기획과 기획자와 작가의 관계와 협업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현대 미술에 대한 이해와 관심을 높이기 위해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다.

민성홍의 작업은 버려진 것을 수집하고 그것을 새로운 형태로 변형하는 시각적 조합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는 주로 바퀴가 달린 움직일 수 있는 장치나 비정형적인 형태의 설치로 나타난다. 또한 이러한 작품을 작가가 직접 작동시키는 퍼포먼스를 수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한 경험은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예를 들어 〈다시락〉은 바퀴가 달려 있지만 이를 작동하기 위해서는 균형을 잡기가 어렵게 설계되어 있어 온전히 집중하여 다루어야 하므로 작품과 밀착되어 하나의 몸이 된 것 같은 감각을 느끼게 된다. 〈Rolling on the Ground〉는 버려진 장롱의 뒷면에 그려진 산수화를 앞에 두고 자유롭게 만화경을 움직이면서 관람하는 설치 작업이다. 이런 장치를 통해 보이는 그림은 만화경의 움직임에 따라 파편적인 조합으로 나타나며, 이와 동시에 발생하는 소리와 함께 새로운 감각을 관객들에게 경험하게 한다. 버려진 물건들을 새로운 생명력을 가진 장치로 변모시키는 조합과 이를 작동시키는 움직임은 시각뿐만이 아니라 촉각적으로도 이들을 다시 지각하게 만든다. 이렇게 기존의 그의 작품에 관한 글은 주로 버려진 물건과 움직임에 대한 해석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필자는 그의 이러한 작업에서 우리가 간과하고 지나간 것은 없는지 그의 작업에서 보이는 요소를 꼼꼼하게 다시 살펴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와 작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계속 필자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이러한 움직임이나 조합의 결과로 얻어지는 감각보다는 사실 화려한 장식들이었다. 그가 제작하는 많은 작품에는 장식들이 많이 달려 있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구슬 형태의 장식과 실이다. 구슬은 크게 두 가지의 방식으로 나누어 사용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위에서 살펴보았던 축제에 사용될 법한 화려하고 원색적인 색으로 치장된 〈다시락〉이나 〈Rolling on the Ground〉에서 장치를 지지하고 있는 다리에서 보이는 직선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또 다른 하나는 어떤 장치나 오브제에 자연스럽게 혹은 불필요한 것처럼 드리워져 있는 느슨한 장식이다. 사실 이러한 장식은 일반적으로 주된 것이 아니라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한다. 이는 시각적인 판단에 따라서 어느 대상에 초점을 맞추는가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지지만 그런데도 언제나 주인공과 조연의 구분은 확실히 우리가 세상을 판단하는 가장 흔한 방식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이미 우리가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작가는 이미 버려진 것들에 대한 변형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버려진 것의 재조합의 과정을 통해 다시 주목을 받는 작품으로 대상의 위치를 옮겨놓는다. 이를 주인공으로 본다면 여기에서 장식은 조연으로 이러한 실제적인 변화를 통해 관객들이 그것에 접근하여 작동시키는 행위로 이끌기 위한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역할로 사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엇인가를 장식하고 꾸민다는 것은 타인의 눈길을 끌기 위한 것이고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본능적인 행위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그의 작업 곳곳에서 이러한 장식을 발견할 수 있다. 실제로 그의 작업실 한편에는 이런 꾀어진 구슬들이 쌓여 있다. 우리 주변에서 이와 유사한 형태를 볼 수 있는 것은 기도할 때 사용하는 염주 혹은 묵주이다. 이러한 종교적 의미에서의 구슬은 그 한 알에 염원과 기원을 바라는 기도의 언어적인 의미가 함축적으로 담긴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끊임없이 순환되어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아마도 그의 바람은 언제나 어떤 것들이 더는 중요하지 않게 생각되는 것들이 어떻게든 생기 있는 모습으로 세상과 연결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궁금증을 그에게 물었을 때 그는 구슬을 꿰는 것은 이제 특별하게 작업을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어떤 목적성 없이 하는 일상이 되어 버렸다고 이야기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장식에는 작가의 일상과 특별한 경험이 이미 혼재되어 있다. 따라서 관객에게는 그의 작업이 특별한 것처럼 보일 테지만, 그 특별함은 작가에게 있어서는 일상일 뿐이다. 이렇게 작가의 구슬을 꿰는 반복적 행위는 어떤 의미를 담아서 시작되었지만, 이제는 그런 의미조차 불분명한 순환적 고리에서 만들어지면서 그의 생각의 흔적들만을 남기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장식은 일상적이면서도 작품과 결합하는 순간 그것이 보여주고자 하는 특별한 순간을 조용히 받쳐주면서 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장식 그 자체로도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잇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다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그가 버려진 것들을 물리적으로 이어나가는 방식이다. 천과 종이의 재질로 버려진 산수화를 이어 내어 비정형적인 다양한 형태를 보여주거나 〈Exercise for Variability〉, 〈Drift: Atypical Form〉, 위장막을 통해 무엇인가를 가려버리는 작업을 선보인 〈Drift: Exercise for Limitation〉 같은 작업은 재봉틀을 사용하거나 손바느질을 사용해서 색실로 이어나간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에서도 장식이 빠지지 않는데, 특히 천을 이용한 작업은 테두리에 화려한 솔기로 장식을 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실은 인연을 상징하는 오브제이다. 우리에게 단순히 버려진 물건은 그들의 시간의 흐름을 담고 있는 나와는 상관없던 것들이다. 그러나 그가 발견하고 작업실로 가져오는 순간 그것은 작가와 연결된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된다. 이러한 작가의 행위는 직선적인 시간을 비틀어 고정되지 않은 유동적인 느슨한 시공간을 만들어 내고자 하며 작품으로 전환하여 다시금 새로운 인연을 기다린다. 그가 비정형, 가변성, 제한성, 유연성, 임시성을 작품의 제목에서 사용하는 것처럼 실의 느슨함은 중요한 요소이다. 작가가 생각하는 연결은 고정되고 단단한 것이 아니기에 그 대상을 지속해서 포착해 내기 위해서는 우리도 끊임없이 움직여야 한다. 따라서 이러한 실은 아주 얇고 가는 재질이지만 유동적인 대상을 하나의 작품으로 연결하면서도 그 형태의 변형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에 더해 그가 작업에 실을 잇는 방식은 〈Exercise for Variability〉에서처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지 않고 여러 갈래로 퍼져 있어 또 다른 연결의 대상을 찾아 확장하고자 하는 욕망을 드러내기도 한다. 마치 사람들 사이의 인연이라는 것도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정리해 보자면 민성홍의 작업에서 움직임과 변환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 위해서는 결국 어떻게든 이것을 저것을 잇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그가 사용하는 구슬 장식과 실은 어떤 대상이 고립된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이어지고 연결되게 만들어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변화의 지점들을 생성한다. 이렇게 그의 작업에서 장식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다른 것에 시선을 돌리게 하는 특별함이 있다. 이러한 특별함은 장식이 그의 작업을 일방적인 감각이 아니라 상대적인 감각으로 읽게 만드는 전환의 도구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가 사용하는 장식은 한 지점에서 다른 지점에 시선을 맞추고, 무엇인가가 연결된다는 작업의 행위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생시키기 위한 기본 조건이 된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가 그의 작업에서 구슬 장식과 실을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