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라는 동의대 영화·트랜스미디어 연구소 전임연구원. 동시대 영상미학을 연구하며 영화와 무빙 이미지를 비평한다.

사진적 이미지의 현상학 : 다시 또는 지우기1

윤호진은’ ‘다시’(re-)라는 키워드를 제목으로 삼아 일련의 연구와 작업을 진행해왔다.2
re-라는 키워드는 단연 근대 예술창작과 작품을 둘러싼 근본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근대의 예술작품은 창작 주체가 재연(replay), 재현(representation), 재구성(reconstruction) 등의 방식으로 외부 세계의 사물이나 사건과 관련을 맺은 결과물이다. 캘리포니아, 뉴욕, 서울에서 사진과 관련 매체를 전공한 윤호진의 학문적 이력을 살폈을 때 우리는 윤호진의 [Re]: 연작 작업이 외부의 물리적 세계를 변경 없이 전사(傳寫)해내는 사진 이미지의 재현에 관한 지극히 모던한 작업일 것이라고 짐작하게 된다. 이 짐작은 절반은 틀리다. [Re]: 연작은 재현된 사물과 재현하고 있는 사진 이미지 사이의 존재론적이거나 인식론적 차이에 대해 별반 질문하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미지에 대한 이미지”를 탐구하는 윤호진의 작업은 여성 모델, 맥주병, 화분, 스프링, 시에라 산맥, 산타 모니카 해변, 그리스 조각 등 재현된 사물의 의미와 물성을 의도적으로 못 본 체한다. 게다가 윤호진의 작업은 이미지의 이미지에 대한 작업이더라도, 시뮬라크르로서의 이미지의 본성을 탐구하거나, 이미지가 어떻게 재현된 사물의 원래 맥락이나 의미에서 거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즉 이미지의 전유(appropriation)를 실험하거나 비판하려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Inanimate Assembly〉(2018-2019)는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오픈 소스 아카이브에서 다운받은 그리스 조각 사진 이미지를 해석한 작업물인데 사물과 이미지를 생산하고 전시하는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맥락, 가령 고대 그리스, 21세기 미국 대형 박물관, 21세기 서울 갤러리 사이의 시공간적 이질성은 굳이 강조되지 않는다. re-라는 키워드에 대한 우리의 상상은 절반은 유효하다. 윤호진은 필연적으로 ‘다시-’라는 질문을 경유하는 사진 이미지의 ‘표준화된’ 생산과정’에 대한 메타적 질문을 제안하기 때문이다. 윤호진은 사진 이미지가 재현하고 있는 피사체의 의미, 물성, 사회적 맥락을 ‘지우지만’ 피사체에 대한 촬영, 촬영된 이미지의 현상, 인화, 관람이라는 사진 매체의 표준적 제작과 관람 절차를 가시화하며 이를 문제 삼는다. 이를 통해 윤호진은 사진 이미지가 렌즈를 들고 피사체를 찍는 제작자(author, holder)의 창작물이라는 생각을 뒤튼다. 사진 이미지는 제작자, 관람객(beholder), 모델(sitter) 사이에서 일종의 현상학적 보기(seeing)로 만들어지고 경험된다.3 사진 매체에 대한 메타적인 질문을 통해 윤호진은 어떤 보기를 제안하고 있는가? 이에 답하기 전에, 이에 답하기 위해 작가 윤호진의 개인적인 경력을 잠깐 거론해 보려고 한다.

작가는 아직 사진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필름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암실에서 현상하던 2000년대 초반, 조도 높은 빛으로 충만하며,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정확하게 포착하는 카메라의 능력을 숭상했던 “F/64 그룹(Group F/64)”의 전통이 남아있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사진 작업을 시작했다. 윤호진은 자신의 작업을 설명하며 매번 이 사실을 강조한다. 윤호진이 예술 기관이 사진 매체 환경의 변화를 이해하고, 변화와 타협하던 시기에 처음 사진 작업을 시작했다는 사실은 그의 작업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힌트를 제공한다. 사진 학교에서 필름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를 함께 배운 첫 번째 세대에 속하는 윤호진은 디지털 카메라를 다루던 초창기 수업에서 사진의 고전적인 형식 언어 유지가 얼마나 강조되었던지에 대해 회고한다. 디지털 전환 이후 촬영, 인화, 현상이라는 사진 매체의 제작 과정이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는 것을 지켜보았던 윤호진은 이후 뉴욕에서 사진 이미지의 물리적 생산 메커니즘과 사진 이미지에 대한 관람객의 관습적 기대를 함께 탐구하기 시작한다. 사진의 과거와 윤호진 개인의 과거는 사진의 현재를 메타적으로 탐색하고 있는 작가의 작업에 선행하는 이미지이자 네거티브 이미지(陰畫)로 그늘을 만들어낸다. 윤호진의 모든 작업은 우리가 가정하고 있던 ‘근본적’ 표준에 대한 감각이 심연으로 사라져가고 있다는 “기이함”의 감각4을 경험하게 한다면 이러한 매체의 그늘이 작업에 드리워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원근법 연구〉, 〈Upside down〉, 〈Beauty Stock〉 등 촬영 과정을 포함하고 있는 초기의 작업이나 과거 촬영한 이미지나 온라인 스톡 이미지를 주로 사용하는 최근의 작업은 안정적인 시공간의 환영과 사진 제작의 선형적 프로세스를 깨트리면서 모델과 관람자를 제작자와 동등한 이미지 생산의 참여자로 초대한다. 〈Inanimate assembly_Horse Fig.〉, 〈#Transparent, #translucent, #opaque, #reflexive〉, 〈Holder, Beholder and Sitter〉 등은 같은 형상을 증명사진 형태로 찍은 여러 개의 이미지를 병치하고 있다. 나는 이미 이 작품들을 묘사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이 작품은 여러 장의 같은 사진인가, 아니면 여러 개의 다른 이미지인가. 〈Holder, Beholder and Sitter〉에서 각 이미지 속 인물의 시선은 약간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여겨지고, 두 이미지는 크기와 선명함에서 차이를 드러낸다. 이 사진은 한 사람이 같은 카메라로 찍은 것일까? 한 번에 찍은 사진일까? 사진은 포착된 후 사후적으로 재처리된 사진일까? 이 복수의 사진 사이의 동일성 혹은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은 렌즈를 들고 있는 자(holder)인가, 카메라 앞의 모델(sitter)인가, 아니면 두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자(beholder)인가? 윤호진의 작업에서 빛, 탈-프레임(〈Over and Under〉, 〈Double take_SM poster〉 등), 상이한 물성의 지지대(〈Inanimate assembly_opacity〉 등), 재고안된 디스플레이(〈Double take_Light temp.〉, 〈Re-presented〉 등), 규격과 차원의 변이(〈국제사진규격〉 등), 디지털 보정(〈Inanimate assembly_Horse Fig.〉, 〈Sierra Nevada〉 등) 등은 모두 제작, 모델, 관람자 사이의 경계를 재조정하며 현상학적 수수께끼5를 만들어내는 작업의 요소들이다. 예컨대 〈Sierra Nevada〉의 디지털 윤곽은 제작의 율동이자, 모델의 현전으로서 관람 시선을 구성한다.

윤호진의 사진은 플루서가 통찰했던 ‘장치’처럼 사고방식을 시뮬레이션한다. 하지만 모델과 관람자의 참여 속에서만 상상될 수 있는 이미지를 제안하는 윤호진은 플루서가 사진기에 프로그래밍되어 있는 존재로 묘사한 사진사가 아니다.6 작가는 모델, 관람자와 동등하게 이 현상학적 수수께끼를 만드는 일에 참여함으로써 세계의 강제, 사진 기계의 강제 양자에서 해방된다. 글의 첫머리에서 나는 윤호진의 사진에서 피사체의 의미, 물성, 맥락은 의도적으로 삭제된다고 지적했다. 윤호진에게 시에라 네바다 산맥이나 산타 모니카 해변은 숭고함이나 아름다움의 피사체가 아니다. 그러나 사진의 현상학 속에서 이미지의 표면이 ‘찢어지고’ 이미지가 액자 밖으로 쏟아져 나올 때 관람자는 움직이지 않던 (inanimate) “세계의 와해”7에 사로잡힐 것이다.



  1. 여기서 지우기는 구성과 삭제의 이중적 운동을 뜻한다.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은 합리적인 시각적 재현을 가능하게 하는 르네상스의 발명품으로 간주되는 원근법이 “지움의 법칙”으로도 작동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디디 위베르만은 대기 원근법이 “지움의 법칙”에 따라 사물을 나타낸다고 주장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인용한다.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이나라 옮김, 색채 속을 걷는 사람, 현실문화연구, 2019, 67-68쪽. 

  2. 2016, 〈[Re]:〉, 175 갤러리, 서울; 2017, 〈[Re]:[Re]:〉,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청주; 2019, 〈[Re]:[Re]:[Re]〉, 하이트 컬렉션, 서울. 

  3. 윤호진은 2020년 설치 작품 〈Holder, Beholder and Sitter〉에서 직접 이 용어를 사용했다.  

  4. 마크 피셔,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 구픽, 2019. 책에서 마크 피셔는 이런 감각을 “인지적 기이함”으로 명명한다. 75쪽.  

  5. 나는 윤호진의 자기 참조적 사진 작업이 제안하는 현상학적 수수께끼를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이 “구역(pan)”이라고 부른 것에 견주고 싶다.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은 인지의 대상이 되는 가시적인 것을 이미지로 규정하는 대신 가시성과 인지 가능성을 훼손하는 징후적인 요소를 포함하는 이미지의 개념을 제안한다. 구역은 가시성 내의 동요의 지대를 일컫는다. 조르주 디디 위베르만, 앞의 책. 

  6. 빌렘 플루서, 윤종석 옮김,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커뮤니케이션 북스, 2004.  

  7. 마크 피셔, 같은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