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원은 미학을 공부했고, 주로 서울에서 기획을 하고 글을 쓰고, 번역을 한다.

“이제 안 산다면서요.”

“그러게요. 6개월 만이에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분명 D는 물욕이 사라졌다고, 수년간 모아온 피규어를 진열대 안에 빼곡하게 채워 전시한1 다음에 통째로 청산하고 나서도 섭섭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나는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하지만 굳이 집요하게 따져 묻지 않았다. 보관하는 것도 일이었을 거라 짐작했을 뿐이다.

언박싱은 간소했다. 공룡 피규어와 그것이 설 수 있는 적당한 베이스. 잘 모르는 눈으로 보아도 만듦새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게코(Gecco)에서 출시된 이 티라노사우루스 피규어가 위협적이기는커녕 맹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누렇고 돌돌도돌한 피부, 볍씨만큼 작고 어딘가 비어 보이는 눈, 귀엽게 앙다문 입, 치명적으로 하찮은 앞발과 둔부에 쏠린 무게 중심. 꼿꼿하게 선 티라노. D는 피규어를 꺼내는 내내 심드렁했고, 호들갑을 떨며 사진을 찍어대는 쪽은 오히려 나였다.

“귀엽네. 근데 얘 비율이 왜 이래요?”

“원래 고질라 때까지만 해도 공룡은 이랬어요. 당시 학계에서 복원한 티라노사우루스는 꼬리를 끌면서 바닥에 수직이 되도록 직립했으니까. 그러다 쥬라기공원을 만들 때쯤 머리부터 꼬리까지 땅이랑 수평이 되도록 반듯해졌어요. 더 잘 달리고 힘도 세고.”

“시대착오적이라 애잔하게 귀여운 걸까요.”

“그렇게 따지면 우리가 아는 모든 공룡이 그렇겠죠. 그 이후로 깃털이 보존된 공룡이 발견되었지만2 우리의 몬스터가 푸드덕거리는 꼴 못 봐서 여전히 밋밋하게 연출하고 있으니까요.”

어딘가 모자라 보이는 티라노가 지나가 버린 시간에서 온 형태라는 점은 그 귀여움을 가증했다. 하지만 어째서 뜬금없는 시간의 구간을 발췌해 담은 물건을 만드느냐 묻는다면 D는 피규어가 원래 그런 것이라 대답할 것이 뻔했다. D는 나도 모르게 발로 툭툭 치고 있던 박스를 끌어다 한구석으로 치워주었다. 거기는 포장 박스를 나온 피규어가 무질서하게 담겨 있었다.

“공룡에 깃털 무늬 세기는 조형사 마음은 어떨까. 재미있는 과제가 될 수도 있고요.”

“피규어는 그렇겠지만 촬영 현장에서는 CGI 처리를 하겠죠? 직접 모형을 만들어서 스톱모션으로 촬영하는 수고를 들일 리가 없잖아요.”

“그 이야기를 하려면 일단 만달로리안을 보셔야 해요.”

2019년부터 ‘디즈니+’에서 방영한 스타워즈 시리즈의 스파게티 웨스턴풍 드라마 만달로리안(The Mandalorian). 얼마 전 D는 무척 고무된 듯 이 시리즈를 추천했다. 스타워즈 세계관 속 전투 종족인 만달로리안은 생경한 은하계에서 활동하는데, 게임 엔진의 리얼타임 렌더링 기술과 LED 스크린을 사용해서 촬영했다. 후작업을 통해 가상 공간을 구현하는 것이 아니라 LED 스크린에 실시간으로 산이고 강이고 태양이고 만들어 출력한 상태로 촬영한다는 점에서 CGI와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이다. D가 함께 보내준 제작 영상 속 배우는 광활한 사막에 서 있었다. 그를 둘러싼 스크린에는 제법 그럴싸한 해와 그림자까지 구현되어 있었다.

“간달프가 그린스크린 세트에서 촬영하다가 이러려고 연기자 되었나 자괴감 들어서 울었대요.3 이제 눈물을 그쳐도 되겠죠.”

“CGI로 만든 존재가 우글우글한 할리우드 영화와 굳이 세트와 소품을 전부 제작해서 진정성을 증명해내는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4의 사이의 정반합을 찾은 건가?”

“일본 특수촬영물 시대는 저물고 있는데, 이렇게 갱신되는 것인가.”

“그런데 주인공은 끝까지 투구 안 벗나요?”

“그게 매력인데.”

“요다도 아기로만 나오고?”

“그것도 매력인데.”

“알아요. 그러니까 이런 콜라보도 나오지.”

베이비 요다가 그려진 녹색 팔레트에는 동그란 아이섀도 아홉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스타워즈 세계관을 모르지만 요다 ‘아기’가 매력적인 캐릭터라는 것은 분명했다. 미국 코스메틱 브랜드 ‘컬러팝(Colourpop)’5이 최근에 출시한 만달로리안 콜라보 아이섀도우 팔레트가 불과 몇 시간만에 매진됐으니 말이다. 9구 아이섀도우 팔레트의 수요와 스타워즈 팬의 교집합이 얼마나 있을지 잠시 생각했다.

“이제 팔레트 끊었다면서. 스타워즈 팬도 아니라면서.”

“어차피 놓쳤어요. 몇 주 뒤에 재입고 된다는데, 한번 실패했더니 마음이 식었어요.”

“으엑. 이런 녹조 색깔을 눈에 바르는 사람이 있나요?”

만달로리안은 물론 스타워즈 팬도 아니었는데 그 팔레트를 향해 일어난 물욕은 그것이 잘 만든 콜라보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레볼루션 메이크업’에서 시트콤 ‘프렌즈’ 기념 콜라보 상품을 런칭했는데, 크게 실망스러웠던 것과 대조적이다.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관건은 캐릭터 해석과 물질화의 상수 설정이다. 요다의 역사와 성격, 피부의 쭈글쭈글한 텍스처는 소거하고, 그 살색만 추출하여 음영의 정도를 조절해 여러 색으로 분절해낸다.

“이 정도면 웨어러블 한 건데. 패키지 예뻐서 사는 경우도 있고, 메이크업도 컬렉터가 있어요. 메이크업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어차피 쓸모없는 거니까. 피규어랑 다를 것도 없죠.”

“스타워즈가 아니라 메이크업이 좋으니까 산다?”

“아이돌 굿즈가 아닌 이상 대상에는 관심 없고 물욕만 부리는 건 흔한 일이죠. 하긴 아이돌 응원봉이라면 닥치는 대로 사 모으는 사람도 있지만.6 아이돌 논란 생길 때마다 당근에 굿즈가 한 트럭씩 쏟아져나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럴 때마다 멸망한 제국의 스산함 같은 것이 느껴진달까.”

D는 바나나 빵을 건넸다.

“추천해줄 것 있다 그래서 일본 애니메이션일 줄 알았더니. 미제도 많이 봐요?”

“원래 구분을 하는 건 아니고. 미국은 주로 스토리로 쇼부를 보려고 하니까요. 게으르고 재미없잖아요.”

“결국 사람들은 스토리에 혹하는 거예요. 토니 스타크 아버지가 자상했어도 아이언맨이 있었을 것 같아요?”

“역시 미국통은 노답이야. 시리즈의 성공 비법은 감동적인 스토리가 아니라 흥미로운 형태를 파생시키는 데 있는 거 잖아요. 요다 팔레트 쓸 때 요다의 여정을 기릴 것도 아니잖아요.”

어쩔 수 없는 미국통은 굳이 쓸데없는 것을 물어보기로 한다.

“정말 미련 없어요?”

“어차피 선주문 페이지에 올라온 이미지 보면서 한창 기대하다가 결제 버튼 누르는 순간 끝이에요. 그 뒤에 일어나는 일은 덤인 셈이죠.”

“그래서 택배 박스에 발을 달았어요?”7

“피규어를 손에 쥔들 그걸 종일 쳐다보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결국 물욕은 물욕이 아닌 거네요.”

“아마도. 물욕은 물건으로 건너가지 않고 행위의 동기에 머물러 있는 거니까.”


  1. 《돈선필 개인전: 끽태점》(2019년 2월 20일~6월 13일, 아라리오뮤지엄 인 스페이스). 

  2. “새야? 공룡이야?.. ‘깃털공룡’ 화석들이 남긴 쟁점들,” 사이언스온, 2010.2.19. 

  3. “〈호빗〉 간달프 역 맥켈런 눈물… 이건 배우가 되려했던 이유가 아냐,” 뉴스원, 2014.12.11. 

  4. “팬에게 ‘고퀄리티’ MV 보여주려 ‘위험한 촬영’도 직접 소화한 방탄,” 인사이트, 2018.5.19. 

  5. 2014년 론칭 이후 한 달에도 여러 개의 신상을 저렴하게 찍어내서 코스메틱계의 패스트 패션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미국 코스메틱 브랜드. 내부 생산라인을 갖추고 있어서 트렌드 분석, 제품 기획, 생산과 디자인이 한 큐에 이루어져 신속한 제품 출시가 가능하다.  

  6. 달플, “아이돌 응원봉 지속력 측정 랭킹”, 12분 19초. 

  7. 돈선필, 〈FFWP〉, 2020, 혼합 매체 (10 pcs), 20×15×20센티미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