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휘는 산업디자인과 미술이론을 전공하였고, 2012년부터 하이트문화재단 큐레이터로 근무하고 있다. 제2회 아트선재 오픈콜을 수상하였고(전시: 《쭈뼛쭈뼛한 대화》(아트선재센터, 2013)), 최근에는 《나, 그리고 그 밖의 것들》(하이트컬렉션, 2020), 《리브 포에버》(하이트컬렉션, 2019), 《올오버》(하이트컬렉션, 2018), 《옵세션》(아르코미술관, 2018) 등을 기획하였다.

신이피는 영상, 퍼포먼스, 드로잉, 설치의 형식을 통해 현대사회의 개인이 공동체나 자연생태계와 맺는 관계 및 이를 둘러싼 내러티브를 미시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한다. 그의 주된 시각화 방식은 퍼포먼스와 설치, 그리고 영상 작업으로 귀결되어 왔는데, 파편적이고, 설명적이지 않은 비선형적인 내러티브를 보여준다. 작가는 과학적 실험실을 작업의 형식과 재현 형식으로 끌어들이는데, 과학에 대한 신이피의 관점은 과학이 이성적, 객관적, 평균적이라는 단어 하에 관찰과 실험을 자행하였다고 보고, 과학자의 전지적 시점을 작가의 작업의 모티브로 삼는다. 이글에서는 작가가 다루는 사회적 소재, 실험실을 표방하는 재현방식과 함께 그의 미시적 내러티브라는 영상 화법에 대해 논하고자 한다.

신이피의 초기작들은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소외나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 즉 사회적 측면에 초점이 맞춰 있다. 그의 〈깃발(Flag)〉(2011)는 파리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몽마르트르 언덕에서 항복을 상징하는 하얀 깃발을 휘젓는 여성이 등장한다. 이 영상은 화면의 면적 대부분은 하늘과 구름이 차지하고 있고, 화면 한쪽에 서서 공중에 흰 깃발을 나부끼는 여성의 모습이 제일 중심적인 장면이다. 실제 영상에서 나는 소리는 어떤 이의 다소 가뿐한 호흡소리다. 작가는 현대인이 공동체에서 갖게 되는 소외의식이나 소통의 단절이 필연적임을 절감하며, 유약한 개인의 항복을 나부끼는 깃발과 호흡의 시청각적 대비를 통해서 표현하였다. 또한 작가는 에리히 칼러(Erich Kahler)의 “인간의 역사는 곧 소외의 역사(The history of man could very well be written as a history of the alienation of man.)”1라는 말을 인용하는데, 이때부터 현대사회의 집단화 경향으로 인해 수몰되기 쉬운 개인의 내러티브를 미시적 내러티브라는 측면으로 고찰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깃대(Flagpole)〉(2014), 〈소금도시(Salt City)〉(2014)와 같은 퍼포먼스 영상에서도 국가와 개인, 도시개발과 개인의 꿈을 대비시키는 작업을 이어 나갔다.

이후 작가는 거대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관심을 지속하면서, 작업 형식과 태도의 방법론으로써 작업 과정이나 형식을 일종의 과학적 실험실로 표방하며, 실험실의 전형을 보여주는 도구들을 작업 과정, 시각적 재현 방법 등에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세포배양접시(Cell Culture Dish)〉(2014)는 투명한 배양접시 위에 흑백 영상을 프로젝션한 영상 설치 작업이다. 마치 현미경으로 미세한 세포를 관찰하는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이 영상은 자세히 살펴보면 플러스 사이즈 모델의 누드다. 작가는 거대 사회에 의해 재단, 검열되는 개인을 현미경 등 과학적 도구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세포 단위로 치환하여 사회와 개인의 대비를 극대화하였다. 라투르는 과학에 있어서 어떤 미시적 사실은 특정한 도구들이 존재함으로써 기록 가능하며, 이 장치들에 의해서 과학적 실재가 구성된다고 말한 바 있는데,2 신이피가 실험실을 표방하며 사용하는 도구인 세포배양접시, 핀셋 등은 전형적인 미시세계를 관찰하기 위한 실험실 도구로써 개인을 미시세계의 존재로 완벽하게 치환해준다. 이후 〈XY-SA 0900〉(2015), 〈XY-BR〉(2016), 〈XR-BR Slide Box〉(2016), 〈XY-BR Specimen Box〉(2016) 등과 같은 작업들에서도 작가는 개인이 실험실의 실험 대상으로 채집, 분석당하는 것처럼 비유하였다. 이때 작가는 과학이 이성, 객관성, 평균 등의 개념을 내세워 절대적 권위를 가지며, 실험실의 과학자는 전지적 시점에서 관찰과 실험을 자행한다고 상정한다. 또, 이 과학자의 시점이 작가의 작업 모티브라고 밝히면서 자신이 실험실의 주인이자 관찰자로서 젠더, 외모, 직업 등에서 벗어나 외부 시각을 유지하려고 함을 분명히 한다.3 그런데 신이피의 미시적 내러티브의 대상은 인간 개인에서 점차 인간과 자연의 관계로 확장되어 간다. 이때 실험실의 주인인 작가는 인간과 자연 사이에서 완전히 객관적일 수 없는 애매한 위치가 되지만, 인간 중심적 정책과 행위들이 자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보고자 하는 것 같다.

신이피가 개인의 미시적 내러티브에 대해 다룬다고 할 때, 그 대상은 불특정 개인인 측면이 강하다. 〈또 다른 죽음(Another Death)〉(2016), 〈Autopsia〉(2017), 〈보이지 않는 차원(The Hidden Dimension)〉(2017), 〈희연한 잠(A Sleep in Whiteness)〉(2017) 등은 특정 도시나 지역에서 진행된 작업이지만 작가는 구체적인 사건, 인물 등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는 작업의 동기, 리소스 등을 최대한 파편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전체적인 서사나 주제를 구체적으로 표명하지 않는다. 제주도 김녕 지역에서 들은 구설에 대해 다룬 〈삼다풍경(Triangle Scape)〉(2016)에서나 약간의 줄거리가 모아지며, ‘그녀’에 대해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듣고 괜스레 긴장한 ‘나’가 나올 뿐이다. 그런데 이조차도 작가가 구설의 대상이 관찰대상이지 화자가 아닌 점을 나타내기 위해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소문의 여자』에서 빌려온 화법임을 밝히고 있다.4 〈희연한 잠〉은 북유럽 오슬로의 공동묘지에서 찍은 흑백 영상 위에 시적인 스크립트가 병치된다. 작가는 북유럽 설원에서 개인의 고립과 죽음에 대한 불안한 감정이 고요하면서도 끊임없이 환원되는 느낌으로 영상을 연출하였다. 자막의 화자인 ‘나’가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지만 ‘경계선’, ‘변화’, ‘유기체’, ‘선택’, ‘메아리’, ‘위협적인 다수’와 같은 어휘들은 흑백 처리, 반전 처리된 화면만큼이나 차갑고 추상적이다. 또, ‘숨’, ‘가래’, ‘썩어가는 것’, ‘몸 냄새‘, ‘혀’ 그리고 작가가 만든 ‘희연한’과 같은 어휘들은 불안감을 조성한다. 작가는 작업에서 구현하는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를 “빡빡하게 쓰인 글에서 한 줄을 지우고 영상 이미지로 대체하고, 또 몇 줄을 지우고 다른 이미지로 다르게 말해보려 한다”고 말한 적 있다. 이때 “자연스레 텍스트는 앞뒤가 안 맞는 분절된 시처럼 보이고 영상 이미지들은 앞의 글에 붙는 것 같았다가 다음 글에 붙는 것 같기도 하게 얼기설기 편집되기도 한다”고 하였다.5 이와 같은 편집 방식은 관람자에게 내러티브에 대한 몰입보다는 심리적 거리를 두고 영상을 대하게 만든다.

한편, 작가는 프랑크푸르트 젠켄베르크 자연사박물관에서 고도의 기술로 박제된 다양한 동물 표본을 보게 되었고, 자연의 종을 수집, 보존한다는 명목으로 죽음이라는 방식으로 생명을 보존, 기록하는 인간의 모순적인 욕망을 목도하였다. 그리하여 〈다리의 감정(Emotion of Leg)〉(2018)에서 작가는 자연사박물관의 동식물뿐만 아니라 나치 수용소 희생자 등 자연의 개체나 인간 개인을 ‘더미’라는 전체로 뭉뚱그려 생명에 대한 감각을 무감각화 시키는 것에 대해 다뤘다. 영상에는 침에 꽂힌 꿀벌, 박제 동물, 포르말린 용액에 담긴 동물 표본, 희생자 추모시설 등 여러 가지 구체적인 대상이 등장한다. 이미지들의 연결은 파편적이다. 반면 자막은 천천히 내러티브를 내보낸다. 전체적인 영상의 속도는 자막의 속도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관람자는 자막의 화자를 의식하는데, 이 화자를 인간과 자연 중 어느 한쪽으로 상정하기가 어렵다. 이는 작가가 텍스트로 전개되는 내러티브를 인간이라는 전체, 혹은 자연이라는 전체, 어느 한 전체를 위한 것으로 만들지 않고, 화자를 개체, 개인화 시켰기 때문이다.

그의 최근작은 국내에서 리서치 및 제작한 도시와 생태에 대한 영상들이다. 〈죽은 산의 냉철한 새#01〉(2019), 〈죽은 산의 냉철한 새#02〉(2020), 두 작품은 동물 박제의 형태 중 죽은 상태 그대로의 재현을 의미하는 데드 마운틴(Dead Mountain) 스타일이라는 단어로부터 시작되었다. 우선 〈죽은 산의 냉철한 새#01〉는 김포한강신도시 개발과 새들의 생태에 대해 다루었으며, 〈죽은 산의 냉철한 새#02〉는 행정명령에 의해 살처분된 돼지들의 예비살처분 기준과 4000여 곳에 이르는 매립지의 현재 실태에 관한 조사를 기반으로, 구제역 등 질병 확산을 차단시키는 현대 과학 및 행정의 아이러니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 영상에는 󰡒둘은 서로의 환경이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 문장이 나오는 순간 화면에는 여러 동물들이 쌍으로 등장하지만, 텍스트가 지시하는 ‘둘’은 화면 속 동물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라는 두 가지 전체(군)를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작가는 이 작품에 대해 전염병을 살처분, 매립, 소독과 같은 방식으로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아이러니와, 인간의 감정과 정신병학을 추상적으로 비유하여 유한하고 연약한 생명체에 관한 내러티브를 담았다고 했었다.6 그가 말하는 추상적으로 비유하기란 무엇일까? ‘두 남자가 나타났다’, ‘교회와 성당, 좌파와 노동당, 흑인과 아랍인으로 나눌 수는 없었다’, ‘안과 밖으로 나누었다.’ 영상의 텍스트에서 작가는 끊임없이 ‘둘’이라는 관념적 숫자에 대해서 비유를 찾아 생각을 쪼개고 확산시켰는데, 바로 그의 추상적으로 비유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작품의 관람자로 하여금 또 한 번 자연 개체나 개별 인간 그 어느 쪽에도 쉽게 치우치지 못하도록 만든다. 오히려 ‘거리가 중요했다’라는 텍스트가 심오하게 다가온다.

원고를 쓰기 전에 필자는 작가의 ‘미시적’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거시적’의 반대급부로 보고 둘을 스케일로 구분해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신이피의 작업들로 볼 때 그의 ‘미시적’은 ‘하나’로서 개인, 또는 ‘하나’로서 개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타당해 보인다. 스케일이라는 기준 역시 개인이나 개체를 작은 더미들로 뭉뚱그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작가의 ‘미시적’이라는 개념은 ‘개별적인’에 가깝게 이해되며, 그가 추구하는 미시적 내러티브는 개별화된 내러티브라 할 것이다. 물론 개체에게든 개인에게든 거리는 중요하다. (끝)



  1. Erich Kahler, The Tower and the Abyss: An Inquiry into the Transformation of the Individual, New York: G. Braziller, 1957, p. 43. 

  2. 브루노 라투르, 스티브 울거 저, 『실험실 생활: 과학적 사실의 구성』, 이상원 역, 서울: 한울, 2019. 

  3. 작가노트(2019)에서 인용. 

  4. 작가의 포트폴리오(2020) 내 작업 설명에서 인용. 

  5. 정세라, 김진, “개별적 내러티브의 관찰: 신이피 인터뷰”, 더 스트림, 2020.1.21, www.thestream.kr/?p=7526 (2020년 10월 접속).  

  6. 작가의 포트폴리오(2020) 내 작업 설명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