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웅은 인권운동과 더불어 시각문화 및 미술평론을 한다. 2011년 제 4회 플랫폼 미술비평상과 2017년 제2회 SeMA 하나 평론상을 수상했다. 공저로는 『감염병과 인문학』(2014), 『메타유니버스: 2000년대 한국미술의 세대, 지역, 공간, 매체』(2015), 『한국의 논점 2017』(2016)이 있다. 현재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운영위원장이다.

필자가 이미정 작가를 기억하는 작업의 주된 키워드는 섹슈얼리티였다. 작업 초기 〈Pink lens effect〉(2009)를 비롯해 그가 주목하는 섹슈얼리티는 두 사람 이상의 관계로 이뤄지는 섹스 자체보다는 섹슈얼리티의 기호(symbol)를 시각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직접적인 행위를 표상하기보다 성애적 신체의 기호를 도해한 것에 가깝다.

반구형 원기둥과 구멍들의 핑크색 조합은 도구적 기능보다 쾌락의 표상으로서 성적 연상을 강하게 추동한다. 다시 말해 섹슈얼리티를 소재 삼는 이미정의 작업은 행위의 목적이나 사물의 사용가치에 집중하기보다 이들을 기호로 추상화하고 그 효과를 전시하는데 역점을 둔다. 신체를 자극하는 직접적인 감각의 기제들을 기호로 치환할 뿐 아니라, 구체적인 내용과 맥락으로부터 성적 기호를 조형언어로 풀어내는 것이다.

작업 문법은 섹스로 매개되는 신체의 체위와 성감대, 기구의 근접한 거리를 벌려나가며 다른 사물과 행위로 범주를 넓힌다. 그간 작가의 작업을 논해온 비평들이 섹슈얼리티를 모티프 삼았던 초반의 작업을 (비)의도적으로 누락하거나 단절하는 경향과 달리, 이미정은 기호의 외양을 가진 납작한 물성의 오브제, 또는 기호-오브제라는 큰 우산 아래 성애적 쾌락으로부터 소유와 전시 욕망으로 대상을 변주하며 기호를 가공해왔다. 작가는 대상으로 삼는 사물들에 사용자의 신체를 유비시키고 감응을 이끌어내며 작법을 분기해낸다. 가령 성애적 기호들을 피트니스(〈Take-out fitness〉, 2014)와 풍경으로 병치하고 접목시키는가 하면(〈Forbidden landscape〉, 2014), 근간에는 기호의 자율성을 강조하며 기호 자체의 변주를 시도한다. 속담과 격언을 소재삼아 이를 이미지로 재현하고 기호화하면서 둘 사이 간극의 긴장과 연결 가능성을 탐구하는 〈Once upon a time there was a rock〉(2018)이나 신체를 가구와 유비시키며 변형적 시각기호를 모색하는 〈Body collection〉(2013-2018), 기호의 물리적 지지체로서 납작한 평면의 형식을 심화하고 이를 수납용 소재와 기구로, 또는 벽을 채우는 장식으로 배치의 기술을 구사하며 기호의 공간성 탐구로 나아가는 〈Flat-pack〉(2017-)시리즈는, 성적 뉘앙스 너머 사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와 이를 둘러싼 욕망들을 기호로 압착하고 접합시켜 상이한 이미지 효과들이 중첩하고 맞물릴 수 있는 복수의 레이어로서 비평적인 오브제를 구축하기에 이른다.

그런 점에 이미정의 작업이 ‘기호들을 욕망하고 소유하고 발현하는 일상의 표면을 이미지로 드러낸다’ 1고 설명하는 구나연의 분석은 기호론적 관점의 접근을 뒷받침한다. ‘대리석 텍스쳐 시트지와 캘리포니아든 바르셀로나든 조도가 높은 청명한 LED하늘처럼, 룸메이트 이름을 이니셜로 부르며 뉴욕의 기분을 내는’ 것처럼2 대상으로부터 갖는 만족감이란 유행과 상품시장의 조류에 휩쓸려 다니는 살갗의 차원에 느끼는 일시적인 정념에 다름 아니다. 다만 오해하지 말아야할 것은 작가가 이미지로 구현하는 수행이 그의 직접적인 욕망으로 곧장 추론될 수 없다는 점이다. 특히 《The Gold Terrace》(2018)는 계층성이 시각화된 장치라는 가구와 인테리어 특성상 욕망의 산물로 작업을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자칫 원본과 복제 사이의 고루한 위계를 그대로 전제하며 작가의 오브제를 대상에 대한 결핍에 기인한 대체적 모방물로 평가 절하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욕망의 프레임은 참조 대상에 대한 작가의 태도에 경제력을 조건 붙이며 세대론·계층적 해석을 개입하기도 하는데, 이는 작업을 영세한 조건으로부터 상품을 소유하는데 실패하여 제작하게 된 대리물이자 절충적인 하위 생산물로 격하하면서 청년세대의 열패와 자조로 수렴시키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그것은 대상을 향한 욕망 자체를 조형언어로 창안하는 작가의 비평적 수행성을 간과할 뿐 아니라 사물과 욕망을 기호로 치환하는 쾌락의 효과를 지나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욕망을 충족할 수 없는 경제적·사회적 조건을 추정하기에 앞서 상품을 향한 주목과 관심의 역동 자체를 작업의 모티프로 돌린다면, 우리는 기호로서 상품을 소유하거나 사물을 향한 욕망 너머 욕망의 윤곽 자체를 기호로 옮겨내는 작가의 시도를 읽을 수 있다. 관건은 가질 수 없는 것을 표상하기보다 도달 불가능성 자체를 기호로 전시하고 참조대상을 기호로 추정해낸 사후적 결과물로 역전시키는데 있다. 그것은 상품을 소유하고 사용하며 과시하는 만족을 좇기보다 그러한 태도 전반을 기호로 번역하고 유연하게 용적을 부여하며 기호 자체를 사물화 하는 수행을 실천한다. 결국 작가가 무엇을 욕망하는가를 묻는 질문은 사물을 향한 욕망을 어떻게 시각화하는지 묻는 질문으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다.

이미정이 수차례 명명하는 ‘self’에 대해 ‘모방과 재현의 효과를 계속해서 순환시켜 스스로 재연’3 한다고 말하는 안소연의 문장이 타당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재연하는 행위의 정체가 모방과 재현 자체보다 그것이 산출하는 ‘기호의 역동’이어야 한다. 그것은 원본과 재현물 사이의 위계적인 대립구도를 빗겨난다. 가령 기능의 효과를 추상해낸 오브제에서 기능은 부차적으로 밀려날 뿐 배제되지 않는다.4 그것은 용처가 분명히 보이지만 실상은 ‘쓰임을 배신한 형태’5로서 목적 자체를 표상의 층위로 남기는 사물의 효과를 가리킨다. 오브제가 갖는 물성은 기호로서 비어 있는 피륙, 밀도 있는 입체보다는 납작한 평면들로 조립된 살갗뿐인 사물(things), 전시성 자체를 위해 상품으로부터 분리된 사물의 모양을 한 추상적 가면에 가깝다. 하여 이미정의 오브제에 시그니처처럼 뚫려 있거나 표면에 붙어 있는 한 쌍의 구멍은 사물에 인격을 부여하는 목적에 앞서 기호의 얼굴, 가면으로서 오브제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하는 사인(sign)에 다름 아니다. 그것은 앞서 성애적 오브제들이 신체의 특정 부위를 유비하지만 그와 접촉하고 도구화할 수 있는 육체의 부재를 지속적으로 상기시키는 것과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말하자면 속이 비어 있는 눈구멍은 사물들의 내장과 영혼이 비워진 표상을 가리키지만, 기호의 공백은 보는 신체로 하여금 끌어들이는 구심력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여기에 표상을 채우는 메이크업으로서 페인팅의 역할이 도드라진다. 콘노 유키가 지적한대로 물감은 표면을 채우고 장식하는 기능 너머 장식 자체에 물성을 부여하고 기호 자체를 실재화 한다. 페인팅은 장식의 기능에 머물거나 지지체에 통합하지 않으며 사물 자체를 재현함으로써 ‘오브제를 압도하게 되었다.’6 페인팅은 형태에 색을 입혀 표면의 내용을 보강하지만, 동시에 기성품의 속성과 질료를 지우고 형태의 기능적 효과를 추출한다. 물감으로 대상을 구현함으로써 페인팅의 도구적 위상을 변위시키는 수행은 상품의 사용과 분리된 이미지를 전시하는 효과 자체에 초점을 맞출 수 있다. 해상도가 높지 않은 빈곤한 이미지 체제에도 사물은 눈에 띄어야하기에 오브제의 매트한 표면은 광택까지 표면적 효과로 처리하며 기능의 장식적 효과까지 또렷하게 전시한다. 전시적 속성이 강화된 기호의 가면 위에 선은 간명해지고 디테일은 삭제된다. 일테면 그것은 인스타그램에 오르내리는 썸네일 이미지의 세부적인 장식성을 소거하고 한데 압축시켜 추상화한 회화적 픽토그램(pictogram)과 이모지(emoji)에 근접한다. 오브제는 기능의 효과를 형상화한다는 점에 모방이기보다는 모방의 의도를 모방한 결과물이며, 사용가치 대신 전시성 자체를 교환 가능한 기호로 만드는 역학의 산물이다.

사물을 기호로 번역하고 다시 사물로 재(再)명명하는 작업은 욕망의 대상으로서 사물의 실체를 소거하지만 동시에 기호의 본질적인 공백으로부터 사물의 존재를 환기한다. 이는 작가의 비평적 산물인 동시에 기능의 효과를 쾌락으로 전환시키는 실천이기도 하다. 하여 과거 작가가 표구한 ‘돈도 없고 좆도 없지만’(〈명언 짓기〉, 2011)은, 자조적이고 치기어린 외침으로 보일지라도 어떻게든 생존하겠다는 절박함의 의미론적 접근보다는 결핍의 단어 자체를 입 안에 굴리는 화용론적 쾌락으로 다시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또 다른 역설을 발견할 수 있다. 사물을 참조하여 모방하고 재현하는 이미정의 작업은 외려 원본과 재현의 위계적 이분법을 역전시키고 있지는 않은가. 기성품으로부터 사물의 레이어를 발라내고 절합하여 사물화된 기호를 구축하고 납작한 물성을 부여하며 작가의 손을 거친 오브제는 일회적인 작품으로 산출된다. 그것은 기호로 압축되고 온전한 사물의 형태와 밀도를 갖지 않고 있음에도 작가의 이름 아래 제작된 작품으로 명명된다. 산업생산물로서 상품을 일차 대상 삼는 작품이 상품의 전시적 속성을 추출하여 전시 가능한 결과물을 만드는 공정까지 포함한다면, 상품경제의 질서로부터 비평적 기호의 형식들을 시각예술의 문법으로 창안하는 작업은 예의 질서를 어긋 냄으로써 예술의 부가가치를 생성하는 패턴을 충실하게 실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설령 ‘자위’의 출처가 영세성을 가지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할지라도, 그가 도모하는 ‘셀프/자력갱생의 쾌락’은 사물에 대한 직접적인 소유와 향유의 욕망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한 기호적 전유를 실천한다. 이른바 통속적인 쾌락의 습속을 거스르고 비트는 작가의 조형언어는 몸과 노동, 유행과 이야기, 상품과 작품, 도시와 자연, 온라인 네트워크로 종횡무진하며 문법을 세공하고 기호-사물의 쾌락적 실천을 확장한다.



  1. 구나연, 「일상의 표면 안에서」, 2020.

    • 필자의 글에서 인용한 모든 텍스트는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링크: https://emjelee.com/TEXT)

  2. 정세랑, 「우리의 테라스에서, 끝나가는 세계를 향해 건배」, 2018. 

  3. 안소연, 「실제 공간, 실제 재료, 실제 형태를 모방하는 완전한 디스플레이」, 2018. 

  4. 《혼자 사는 법》(커먼센터, 2015) 전시에서 작가의 한정판 굿즈를 소개하는 카탈로그의 문장을 떠올려보자. ‘굳이 사용하겠다면 말리진 않겠지만-’ 

  5. 이미정, 「작가노트: 형태에 대한 6조각의 글」, 2018 

  6. 콘노 유키, 「벽|벽지: 페인팅과 오브제 사이, 혹은 오브제 위에서」,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