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주는 큐레이터이고 현재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곽이브는 시각예술 작가이며 현재 난지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고 있다. 곽이브와 김해주는 2019년 9월 30일부터 11월 14일까지 일곱 개의 이-메일을 주고 받았고, 2020년 11월 20일 처음 만났다.




K to K


9월 30일 (수) 오전 11:05
haejukim@gmail.com에게

여러 장소와 손을 거쳐 전달되는 물질이 코로나 시대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이 되었을지, 아니면 오히려 더 적절한 것이 되었을지 모르겠습니다. 앞면의 이미지로 먼저 전하는 안부, 별 말이 채워지지 않는 여백, 그 협소한 여백만큼 자리를 차지하는 각자의 위치를 알리는 주소.. 그 생김과 구성조차도 시대착오적이면서 가장 최신의 형태 같아 재미있습니다.

아침 8시가 되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를 통해 다른 건물지하에 있는 식당을 찾습니다. 한참 미로 같은 복도를 걷다가 식당가가 있는 로비로 접어들면 창문으로 건너편 외벽에 붙은 미디어월이 보입니다. 이미 블랙미러의 시간이 되었구나 싶어 흠칫하다가도, 그 앞에 멈추는 짧은 시간동안 자연을 대신하는 랜덤한 이미지의 작은 움직임을 보며 환기되는 기분을 느끼며 움직여 변화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즐겁구나 생각했습니다.

10월 1일 (목) 오후 1:43
aeekkvw@gmail.com에게

아트선재센터 입구 오른쪽에 있는 화단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사실 그곳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던 곳이었어요. 작년 봄에 미술관 1층 일부를 샵으로 임대하면서, 외부에서도 샵을 들여다볼 수 있게 담장을 일부 없애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었어요. 그래서 기존의 담장 일부를 없애면서 드러나는 공간은 새롭게 조경을 하기로 하고 전문가에게 의뢰했어요. 그곳에 자라던 낮은 관목들과 대나무들의 제거와 함께 요청했던 것은 “미술관의 풍경과 어울리면서도 자연스러운”이라는 애매하고 추상적인 주문이었습니다. “자연스럽다”라는 말을 조경디자이너 분과 저는 서로 적당히 지저분하고, 구획을 분할하지 않고 여러 식물들이 어우러진 풍경으로 상호 이해했던 것 같아요.

처음 조경을 마친 후의 풍경은 다소 삭막했지만, 초여름이 오고 비가 내리면서 식물이 생장하고 각기 다른 시기에 각기 다른 꽃이 피어나면서 “움직여 변화하는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연스러움”을 조성하면서 자연의 법칙을 받아들이는 문제가 있었는데요. 식재한 식물들과 함께 잡초의 성장도 무척 빨라서 수시로 제거해 주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로서는 무엇이 식재한 것인지 무엇이 잡초인지 알아보기 힘들었어요. 더욱 난감한 것은 대나무였어요. 조경 당시 경계석을 따라 대나무를 많이 제거하긴 했는데, 대나무가 뿌리에서 번식하는 것 아시죠?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얽혀 자라난 대나무가 이미 그 땅을 잠식하고 있어서 수시로 고개를 불쑥 내밀어 “자연스럽게” 조성한 조경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대나무의 뿌리는 잘 뽑히지는 않아서 올라오는 잎들을 잘라주는 정도입니다만 그마저도 제때 제거하지 않으면 화단의 다른 식물들의 성장이 어렵게 될 거예요.

담장을 없애면서 한 가지 사건이 있었어요. 원래 담장을 두 개만 없애기로 한 것이었는데, 포크레인 기사님이 어느새 세 번째 담장을 부수기 시작한 것입니다. 기와랑 윗단 부분이 뜯어 먹히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서 소리치며 작업을 중지를 시켰는데, “그래서 없앨까요, 말까요”라는 실용적인 질문이 돌아왔어요. 담장을 없애면 1층의 내부 공간 일부가 외부로 노출됩니다. 내부 공간이 노출되면 미술관이 더 ‘열린’ 공간으로 보이게 될까 잠시 생각했지만, 공간 안에서의 아늑함은 사라지고 ‘올리브 영’과 ‘시카고 피자’를 바라보는 풍경이 딱히 좋아보이지는 않았어요. (이 두 가게는 며칠 전 코로나 19 여파로 문을 닫았습니다) 담장을 마저 부수려면 포크레인이 들어와 있는 “지금” 해야 한다고 다그치는 목소리를 뒤로 하고 결국 비용을 들여 담장을 다시 복원하기로 했습니다.

이십 년 전에 쌓아올린 한식 담장을 다시 쌓으려다 보니 걱정이 생겼습니다. 전통식 담장이라는 것도 2020년에는 어려운 개념 같은데, 어설픈 무대 세트처럼 어긋난 시간이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부서지지 않은 담장의 일부와 새로 쌓아 올리는 부분을 가급적 “자연스럽게” 이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결과물은 다행히 기존의 담장과 형태가 그리 다르지 않게 되었지만, 이십 년의 시간에 묻어난 바랜 색은 어쩔 수 없이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이렇게 쉽게 형태를 되찾아버리니 ‘전통’이라는 것이 시간의 문제는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겼습니다.

10월 8일 (목) 오전 12:20
haejukim@gmail.com에게

저는 종종 식물을 대하며 잡초를 뽑아 버리는 것은 괜찮은가? 내가 계획한 식물의 생장을 방해한다고 잡초를 죽이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생각을 하곤 했어요. 몇 알의 튼튼한 열매를 얻기 위해, 균형 잡힌 성장을 위해 솎아내고 가지치기를 한다면 속아내지고 가지치기 되어 버려진 것들은 애초에 왜 생성 되었을까. 그러다 자연스러운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자가당착에 도달하면.. ‘엣힝’ 하고 딴 곳으로 시선을 돌려요.
예전에 그렇게 엣힝- 하며 시선을 돌려 ‘백투더퓨쳐’ 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이 있어요. 주변 창작자들을 한 시장에 초대해서 일정 금액 안에서 옷을 만들어 입고 그 시장 길을 걷는 퍼레이드를 했는데, 함께 놀며 경험해보자는 구상을 하는 흥분 이전에 제가 주목했던 것이 과거의 것에서 만들어지는 미래 양식의 패턴이었어요. 건축 환경의 재생, 의복의 양식, 소비의 시공 안에서 미래로 귀환하는 과거를 만드는 현재가 느껴졌거든요. 과거와 현재가 서로 어떻게 영향을 끼치며 어떤 속도로 시간차 복제가 되는지, 현실에 역사화 되어 전통적인 것이 되는지, 그 모습이 또 얼마나 각기 유사한지, 속도를 수치로 명확히 할 수 없지만 지나가는 바람결을 손으로 느끼듯이 인식할 수 있었어요.
퍼레이드는 패션쇼가 되면 안 되었고, 반복 연습을 거친 퍼포먼스가 되어서도 안 된다는 생각에 (가까스로 도착한 사운드를 처음 들으며) 정말-그냥-걸었어요. 주요 관객이셨던 시장 상인들이 되려 아쉬워하시며 몇 번 더 왔다갔다 걸으라고 하시고, 참여하신 분들 몇몇은 몇 회에 걸쳐 공연처럼 하거나 연습을 하고 더 잘 걸었으면 좋았겠다 하셨는데, 혼자 진행하는 일에 힘이 부치기도 했고 어쩐지 그 이상의 것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해질녘에 한번 이 끝에서 저 끝으로 걷고 중국집으로 식사를 하러 갔어요. 지금 되돌아보니 그 때의 싱거움은 무엇이 되지 않는 형태를 자꾸 만드는 제 탓인 것 같아요. 그래도 참 즐거웠어요.

10월 19일 (월) 오후 8:12
aeekkvw@gmail.com에게

저는 서울이 고향이 아니라서 잘 느끼지 못하지만, 서울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이 도시의 여러 장소들과 그곳에 얽힌 어릴 적 기억들을 잘 생각해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원체 기억력이 없어서인지 저는 어릴 적 일들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이제 서울에 산 시간과 고향에서 살았던 시간이 거의 비슷해졌는데요. 서울은 이곳에 살면서 지속적인 변화를 보고 있어서 그런지 오히려 상대적으로 변화를 덜 느끼게 되는 것도 같아요. 마침 제가 살고 있는 동네 옆에 재개발이 한창 진행되고 있는데, 불과 이년 전만해도 골목과 집들이 있었던 자리에 지금은 매일 버섯처럼 아파트들이 올라오고 있어요. 철거가 진행되고 공사용 울타리들이 동네 전체를 감싼 후 요즘은 매일 같이 대형 트럭들과 나란히 출근을 하고 있는데, 그 상황에 어느덧 익숙해진 것 같아요.

어릴 적 일들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은 기억을 떠올리기에는 지금의 하루하루가 너무 바빠서일까요? 제가 종종 기억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품는 이유가, 제 자신의 기억이 잘 떠오르지 않아서인가도 생각해봤어요. 풍경의 변화가 과연 기억의 작용에 영향을 미칠까요 혹은 그것은 노스탤지어의 가정일까요. 만약에 한국이 개발이 덜하고, 풍경의 변화가 덜한 곳이었다면 어땠을까, 그래서 예전에 살았던 곳을 지나갈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금새 떠오르고, 나의 과거가 재구성된다면 시간의 흐르는 것을 대하는 나의 감각이 조금 달라졌을까, 그런 막연한 생각을 해봅니다. 어쨌든 우리는 개발도상국들의 아시아 중에서도 특히 인구밀도 높은 한국에서 태어난 20세기의 사람들이니, 주변의 환경이 빠르게 변해가는 것을 보고 자란 특수한 감각이나 시간에 대한 인지가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10월 29일 (목) 오후 9:07
haejukim@gmail.com에게

인천에 살 때는 한강 변에 있는 정거장에서 광역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집에 갔습니다. 서울로 이사를 오고부터는 기존과는 반대 방향인 서부면허시험장 정거장으로 20분가량을 걷고 버스를 두 번 갈아타 집에 옵니다. 작업실을 오가며 걷는 이 길이 요즘 참 아름답습니다. 깊은 산속인가 싶은 뷰를 가진 곳도 있고 여러 식물들이 자유롭게 자라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겁고 무엇보다 공기가 좋다고 느꼈습니다. 언덕 위에 있는 작업실 건물이라 낮에는 땀이 나도록 걸어 도착하고, 밤의 귀가 길에는 조깅하는 사람들 사이로 걸어서 가끔은 그들을 따라 달려 내려갑니다. 언덕을 내려와 평지에 다다르면 축구장이 있어서 조명이 강하게 켜진 경기장에서 축구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낮에는 유치원에서 소풍 나온 학생들이 체조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이 곳은 쓰레기 매립지 위에 조성된 공원이어서, 아직도 그 밑의 가스를 에너지로 공급하는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있습니다. 시민들이 산책하고 운동하고 관광하는 장소가 만들어진 자연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기도 하고, 이렇게 쓰레기가 쓰인다면 여러모로 좋은 일이구나 싶었습니다.

요즘은 이 길 인도에 보도블럭을 다시 까는 공사가 한창입니다. 낮에는 걸어가는 내내 배달된 보도블럭이 퍼즐처럼 맞춰지고 땅의 굴곡과 폭에 맞게 절단해 그림을 완성하는 것을 보고, 밤에는 노동자들이 떠난 자리에 남겨진 기물들과 자재들을 봅니다. 며칠은 더 보게 될 것들입니다.

11월 11일 (수) 오전 11:59
aeekkvw@gmail.com에게

두려움에 대한 조금 다른 질문이 있어요. 인터넷에서 곽이브 작가님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는데, 그 중에 작업 후 남은 인쇄물을 관객들이 직접 조형할 수 있게 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과연 언제가 조형이 끝나는 순간인가, 손을 놓는 순간인가 하는 부분은 늘 흥미로운데요. 보통 전시가 오픈하기 직전까지 공간 안에서 형태를 조율하고 조정하는 경우가 많죠. 그리고 그것을 일종의 ‘얼린’ 상태로 두고 예정된 전시의 기간 동안 그 형태를 유지하고요. 때로 그 형태가 흐트러지면 원래의 형태에 맞춰 수정하는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작가가 만들어 놓은 공간 속에서의 조형의 형태를 관객이 계속 바꿀 수 있다는 것은 흥미롭기도 하지만, 저에게는 두렵게 들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경험이 궁금했어요. 작가가 생각하지 않았던 형태로 전시장의 모습이 계속 바뀔 수 있는데, 전시는 여전히 작가의 이름을 달고 있죠. 관객의 개입 또는 참여가 두렵지는 않았나요? 그리고 그 결과들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2020년 11월 14일 오전 9:43
haejukim@gmail.com에게

그래서 전시 오픈하고 2-3일에 한 번씩 전시 오픈시간을 피해 전시장에 가서 관객들의 조형을 치우고 처음 제가 한 셋팅으로 되돌리는 작업을 했어요. 그 변화하는 풍경 속에서 관객들의 흔적을 관찰하고 감탄하고 사진을 찍고 나서 큰 비닐봉지 몇 개에 담아 재활용 쓰레기로 버렸는데, 딱 요즘 길거리에서 볼 수 있는 낙엽 담은 쓰레기봉투 같았어요. 관객들이 만든 형상과 해석에 놀라기도 하고 (핑크빛 페인트를 구현한 종이들은 살skin이 되어 성기나 유방과 유두가 되기도 했고, 검은 창은 여러 얼굴로 만들어지기도 했고, 제가 종이에 그려둔 점선은 그 누구에게도 중요하지 않았어요!), 생겨난 것의 유효기간을 정해 폐기하는 것에 대한 슬픔도 있었고, 다시 리셋하는 과정에서 인생의 신비를 엿본 것 같은 느낌도 있었어요. 전시 막바지가 되자 제가 주문한 인쇄물이 모두 소진 되었는데, 관객들이 제가 벽에 설치한 인쇄물을 뜯거나 접어서 개입을 하더라고요. 그러고 나니까 정말 시간을 통과한 낡은 건축물의 모습처럼 여기저기 닳고 떨어진 모습으로 완성 되었죠. (사실 완성이라고 할 것 없이 폐허 또는 아직 덜 된 모습이었어요)

도로에 담배꽁초들이 한 부분에 몰려 있는 것을 본 적 있으세요? 강가에서 물살의 흐름에 따라 토양이 퇴적되듯, 차들이 오가는 속에서 바람에 쓸려 특정 위치에 담배꽁초들이 모여요. 꼭 그것처럼 관객들의 조형도 길을 남기고 흩뿌려져 있었어요. 길이 생기더라고요.

내내 즐겁고 두려웠어요. 그런데 두렵다는 건 모험이기 때문이고 모험을 해야 어떤 종류의 즐거움과 의미가 생기는 것 같아요.


글. 곽이브, 김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