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우는 기획자이다. 주로 전시, 공연을 기획하고, 가끔 관련된 행사도 기획한다. 지금은 미술공간 취미가 趣味家 Tastehouse를 동료들과 함께 운영하며, 그 안팎에서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기획하고 있다.

권순우: 안녕하세요. 김대환 작가님. 작가님과 함께 취미가에서 전시 《양말이피티》를 열었던 때를 찾아보니, 2018년이었네요. 햇수로는 2년이 지났지만, 체감상으로 훨씬 더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인 것 같아요.

김대환: 네, 마치 전설처럼 느껴지네요.(웃음) 취미가를 포함해서 고마운 도움들이 또렷하게 기억에 남은 전시입니다.

권: 《양말이피티》를 되돌아보자면, 형식상 “실제로 같이 살고 있는 강아지 ‘양말’을 가상의 작업 동료로 설정하고, 몸체는 없지만 실제 강아지에 근접한 특정한 사이즈를 가진, 감각하는 존재로 상정하여, 다시 인간인 김대환이 그와 협업하여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기본 전제가 있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명하거나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전시장 곳곳에 강아지의 시선과 동선을 위한 장치, 그리고 휴먼스케일의 관객 혹은 작가가 개입하여 조망할 수 있는 작은 풍경들을 만들어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그 작업, 전시의 작가는 김대환이지만, 크게 2개의 신체를 전제로 한 태도, 그리고 또 다른 틈입으로, 관객과 작가 본인이 들어설 신체가 공간에서 유동하고 조망하는 상황을 염두에 두셨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아직도 어떤 누군가에게 《양말이피티》를 설명해야할 순간에 김대환 개인전으로 해야 할지, 역시 ‘양말’과의 2인전으로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하곤 해요.

김: 저도 상황에 따라 개인전 또는 듀엣전시로 설명해요. 이런 유연한 부르기는 《양말이피티》라는 전시를 구상할 때부터 기대했었고 역시 잘 쓰고 있네요. 개인의 운영에 대한 생각을 하다 보면 많은 응용의 길을 떠올려요. 전시는 그 중 하나예요. 내가 나를 바라보는 한 방편으로, 함께 십수 년을 지낸 친구(양말)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 덕에 홀로는 할 수 없는, 내가 해내는 일을 할 수 있었어요.

권: 네. 옆에서 전시를 함께 만들어가고 지켜보는 입장에서, 양말과 작가 김대환의 기묘한 협업(팀 양말2pt)으로 만들어지는 내용이 결국 김대환으로 호명되는 작가 개인전으로 수렴되는 구간사이를 진동하는, 마치 떠다니는 조각과 설치, 흔적들, 결과물이 펼쳐진 전시장을 거니는 기분이 좋았어요.
그런데 저는 전시를 준비하기 전부터 작가님께서 언급했던 것들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전시, 전시장을 일종의 테이블로 상정하여, 그 위에 무언가를 얹어두고 보여준다. 그리고 누군가를 초대하여 이야기한다.” “전시로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 여기서 ‘이야기’는 실제 구어로 주고받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조금 더 광범위한 어떤 감각의 대화, 커뮤니케이션의 영역이었겠지요. 예를 들어 ‘양말’은 문자기반의 언어로 쉬이 이루어지는 대화가 아니라, 다른 감각의 대화를 시도하고 보여주기 위해 초청한 타자이자 친구로서 《양말이피티》에 함께했던 것 같습니다.
친구가 되는 전제 중 하나는 “일정한 시간을 함께 견뎌야 한다.”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리고 “(작가로서의 나는) 가능한 사려 깊은 인사도우미를 만들고, 친구 닮은 것을 만들고, 함께 맛있는 무언가를 나누고 싶다.”는 말씀은 그 테이블 위에 작가님이 고민한 이야깃거리를 세심하게 펼쳐 두고, 그것을 통해서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함께 시간을 견뎌낸다면, 어쩌면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양말이피티》의 ‘양말’이도 멀지만 가까운 친구였고, 전시를 같이 준비했던 취미가도 친구였고, 전시에 찾아와주거나 SNS의 사진으로나마 지켜봐준 관객들도 친구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가상의 ‘양말’이와 함께 누군가에게 건넨 테이블 위에 준비한 인삿말로서의 《양말이피티》가 기억에 남습니다.

김: 인사는 중요해요. 사람의 일이니까요. 대체로 저의 경우에는 너무 의식한 나머지 종종 실수투성이 인사가 되곤 하지만, 스스로 마음을 재어보며 최선의 테이블을 준비하는 시간은 그 길이를 떠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내가 꾸려낸 자리를 소개하기 전에 이미 내가 나 자신에게 선사하기로 한 시간을 말끔히 챙겨야지요. 내가 나의 좋은 친구가 되는 일이 첫 단추입니다. (심심한 날 친구가 필요한 날 나는 나는 친구를 만들죠- EBS TV프로그램. 만들어볼까요 中)
친하다는 표현을 종종 곱씹어보아요. 어릴 적, 옆 옆집 나와 닮은 누군가와 친하게 지내던 시간을 떠올려보기도 하고요. 늘 어디까지, 얼마만큼 친해져야 친구가 되는 건지 궁금했어요. 마음을 거절당하거나, 내가 믿던 자리가 실은 없는 것이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건 두려운 일이니까. 사려 깊은 접근이 필요해요. 솔직한 친구들이 고맙고. 우리가 어떤 놀이터에서 어떤 별명으로 부르며 지내면 좋을지 고민하던 순간들을 떠올려요.
그런 점에서 ‘양말’이와 친하게 지내는 일은 특별해요. 아주 솔직한 친구이거든요. 무슨 일을 하던 바닥을 깨뜨리지 않는 친구예요. 서로를 부르며 몸집을 굴리는 시간을 오래 보낸 친구에게 각별한 기대를 품어 보기도 하고, 함께 ‘양말2pt’가 되어 ‘김 대환’과 ‘전시’가 되어보자는 제안도 해보는 거죠. 양말이와 양말2pt를 짓고 김 대환과 전시 《양말이피티》를 만드는 일 전체가 이미, 일단은, 무엇보다 저에게 무척 친근한 테이블 셋팅을 시작하는 고안이었어요. 그리고 나와 닮은 이가 있다면 그에게도 친근함이 느껴지지 않을까 짐작해보기도 하고요. 매사 어떠한 일이 되었든, 그게 누구에게든, 단 하나일지라도 분명히 좋은 일이 되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출발로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일단 팀 ‘양말2pt’와 개인 ‘김대환’에게 좋은 전시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권: 그리고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이, 조금 이상한 표현이지만, 강물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떠다가 그것을 다시 흩어 모아 전시의 공간에 아주 느리게 흘러가도록 하여, 방문객에게 떠다낸 시간의 맛을 음미하도록 의도하셨다는 생각도 듭니다. 관객의 눈과 귀의 입장에서 얼핏 보면 하나의 완성된 개인전 같지만, 하나하나 자세히 보면 제각각 꽤 불균질한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어요. 특히 “손맛”이라 지칭하신 작가의 손끝으로 밀어 넣은 압력과 다듬음의 흔적이 그대로 남는 조각과 부조, 일종의 드로잉들은 굳어진 형체로 완결된 것들이 아니라, 언제든지 물러져 무너지거나 일그러질 수 있는 작업들. 형상이 유지됨이 보장되지 않거나 변형되기 쉬운 재료로 만든 작업 가운데, 또 딱딱한 쇠 걸개, 사람과 강아지가 올라가도 끄떡없는 푹신하고 단단한 경사, 그리고 취미가의 벽과 바닥이 그것들을 지지하고 있는 풍경을 거닐다보면 이상하고 불균질한 시간의 흐름이 끊겨보였던 것 같아요.

김: 앞서, 전시를 일종의 테이블 꾸리기로 표현했는데, 티테이블부터 제사상까지 많은 셋팅을 떠올릴 수 있는 만큼, 전시라는 차림새를 아주 익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 효과와 기대도 나름의 짙은 이해로 그려볼 만 하고요. 그래서 전시를 마주 할 때면 무엇보다 동선을 살펴요. 나에게 허락된 것인지 가늠해보고, 발이든 눈이든 옮기는 거예요. 더 오래 머무는 구간이 있고 빠르게 지나는 구간이 있어요. 입구에서부터 튕겨져 나오는 전시가 있는가 하면, 어떤 전시는 돌아가는 길에서도 잊혀지지 않고 동선을 이어가요. 무엇이 좋다고 말하긴 어렵고, 내가 즐거워 할 수 있는 리듬인지 가늠하는 정도로 생각해요. 《양말이피티》에서는 오래 머물거나 빠르게 지나쳐 주었으면 하는 저마다의 바람이 곳곳에 묻어 있었어요. 그래서 작업물의 만듦새나 속도, 수명을 많이 의식했어요.

권: 관객의 눈의 이동경로와 속도를 고려하고, 분명히 멈춰 있지만 마치 어떤 수행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듯한 작업-조각으로써 시간을 체감하게 되는 방식이 재미있었어요. 2014년에 있었던 〈주문수량〉에서 수령한 부피의 재료박스가 축적되어가는 과정이 만들어내는 이상한 조각적 풍경이나, 2015년 열심히 손으로 만들어낸 조각-돌을 강물에 물수제비 띄워 던지는 〈제갈지미니〉같이, ‘조각’과 ‘작가의 몸체’가 동일 선상에서 어떤 수행적 활동을 하신다는 인상이 들었어요. 〈제갈지미니〉의 배경을 설명하실 때, 만두를 강물에 바치던 제갈공명은 ‘자신의 만듦’으로 지구와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한 것이다라는 해석도 흥미로웠습니다. 작가님이 만든 ‘조각’과 ‘작가 본인의 몸’의 수행은 ‘예술’의 자장 안에서 어떤 커뮤니케이션으로 제시되고, 그것이 수신되기까지의 시간을 가능하면 일상의 시간이 아닌, 다른 시간 속에서 수신되길 기대하신다는 인상이었습니다.

김: 조금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전혀 다른 차원의 초-거-신 같은 걸 상상해보곤 해요. 그러다가, 그보다는 지구가 만든 굴곡을 살피고, 그 위를 걷는 나와 개미와 닭이 어떤 색깔 지층에 잠길까 생각해보곤 해요. 그리고 이와 같은 상상이 가능할 수 있는 바탕을 다시 가늠해보기도 하고, 내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뭘 만들 수 있는지 봐요. 이런 길 위에서 찾은 조각가 중 한 인물이 제갈량이었고, 그의 만들기를 따라 〈제갈지미니〉를 빚었어요. 훌륭한 만듦새로 풍랑을 달래는 일. 밀가루를 뭉치는 손이 하늘에 닿고 제 그릇에 놓이는 일은, 만들기가 내 손바닥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 점심엔 만두를 내 위장으로. 든든한 오후를 지내고 다음날엔 내 몸을 몰드로 쓰고. 그 사이 분리수거를 잘했는지, 화를 무례하게 넘기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고. 사람으로 사는 일을 잊지 않는 만들기를 하기 바라요.

권: 2019년에 있었던 개인전 《안녕 휴먼?》 전시는 그런 면에서 당시까지의 작가님의 고민, 타자의 감각, 휴먼스케일의 시각 인식 방식, 흐르고 유동적인 시간을 ‘조각’의 영역에서 느리게 흘러 보여주고, 다시 그것들이 ‘전시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퇴적되고 저장되는 흔적을 펼쳐 보여주신 전시로 느껴졌었습니다.

김: 펼쳐 보이는 일이 본질적으로 개인에게 좋은 일이 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해요. 필연적인 오해를 감당하면서 소비의 테이블을 마련한다는 게 저마다의 필요가 겹쳐져서 일어나는 일이긴 해도 그들을 근사하게 채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전시장과 전시는 이 과정을 튼튼하게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쉽게도 아직은 기대만큼의 환경을 많이 경험해보진 못했어요. 기대가 꺾이는 일이 두려워서 이미 여러 차례 접어 두는데도 자주 실패를 겪는 편이예요. 그래서 전시를 준비할 때, 펼치는 일과 보이는 일 자체에 대해서 더 의식적으로 생각해야만 했어요. 어디까지 펼칠 것인지,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 줄 건지. 《안녕 휴먼?》은 보이는 일과 보이지 않는 일을 펼쳐 보이는 전시였어요. 보이는 것을 보고, 보이지 않는 것을 그대로 보는 일이 전시장 안에서 경험적으로 듬뿍 전달되기를 바랐어요. 마치, 스트레칭 이후에 더 충실한 걸음을 발견하는 일처럼, 좋은 펼쳐 보기를 하고 난 다음에 발견하게 될 것들이 궁금했어요. 성공적이라면, 사람이 만드는 좋은 일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권: 네 그러고 보니 마치 하나의 맨손 준비운동 세트를 하나하나의 동작으로 보여주신 것 같다는 인상이 들기도 했어요. 최근의 《pack.KUHO》에서 보여주셨던 작업은 흐르는 시간보다는 퇴적된 시간이 응축한, 흘려보내기 보다는 좀 더 단단한 무언가를 만들어 보여주려 하시는 시도처럼 보였습니다.

김: 공공기물의 수명이 그 사용자와 환경에 따라 결정지어지듯이 전시 환경 안에서 살아갈 재료와 질감, 만듦새를 선택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운영 환경과 작업물의 생애가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만들기의 수명에 대한 생각이 쌓이는 반면, 제가 경험한 가장 긴 전시도 3개월을 넘지 않았기 때문에, 작업시간을 더한다고 해도 간신히 반년 정도 사는 것들을 만들었어요. 때문에 판매를 생각하는 건 크게 와 닿지 않거나 더 큰 책임을 부여해야만 하는 번거로운 일처럼 느껴졌고, 무엇보다 작업물이 지낼 이후의 삶을 컨트롤 할 수 없다는 것이 막연하게 느껴졌어요. 애초에 세 달짜리 수명을 가진 것을 억지로 대하는 기분도 들었고요. 물론 저 역시도 다른 작업자의 작품을 구입해서 나의 생활 안에 두고 지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판매와 소장이 이루어지는 건강한 관계를 아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더 큰 책임감이 느껴지는 것이겠죠. 작업물이 지낼 아주 좋은 삶을 응원하고 싶어요. 이런 생각들을 바탕으로 이전에 흙으로 빚어 만들었던 만두 조각을 보석(에메랄드, 오팔, 포도석, 제스퍼)을 깎아 만들어보았어요. 이전의 만들기가 비교적 경쾌해서 쥐는 이의 손동작 또한 빠르게 던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면, 이번의 만들기는 재료부터 튼튼하고 짙어서 깎아 만드는 과정과 바라보는 일과 쥐는 일까지 비교적 느리고 오래 머물기 좋은 만두 조각으로 만들었어요. 멋진 빛깔의 지구를 깎아 빚은 만두라면 그 어떤 곳에서도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지 않을까 싶었어요.

권: 아 기존의 전시와 다르게, ‘판매’와 ‘소장’을 염두에 두고 지속성이 담지된 작업물을 고민하시는 와중에 만들어진 단단함이었군요. 그런 고민에서 만들어진 조각은 조금 더 전통적인 조각의 질료를 사용하면서 김대환 작가님의 작업에 또 다른 레이어가 덧 씌워지는 것 같습니다. 시작은 판매가 전제된 전시에서 응축된 단단함이었지만, 단순히 일회적인 아이디어처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시간이 멈춤에 근접하면서 어떤 수행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작업과 일종의 완결된 사물 사이에서 가능한 조각-작업물을 찾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결과물들로 또 이어지게 될 지 궁금합니다. 그럼에도 또 여전히 ‘테이블’에서 일어나는 대화와 ‘친구 되기’의 시도는 유효한 것일까요.

김: 어설픈 전시 환경을 보란 듯이 믿는 척 하는 연기에 저는 도통 소질이 없다는 걸 여러 번 확인했어요. 그래서 전시를 펼쳐 보이는 일로, 전시장을 티 테이블로 바꾸어서 제가 조금이라도 더 수월하게 딛을 수 있는 튼튼한 규모로 풀어보려 했어요. 이 테이블에서 서로 닮은 표정으로 닮은 모양을 발견하는 시간을 가지는 특별한 경험은 분명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끌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여전히 믿어요. 다만, 지구가 쌓은 훌륭한 지층 케이크를 볼 때면 좀 더 튼튼한 테이블 셋팅을 고안해보아야겠다 생각해요.

권: 다음에 준비될 튼튼한 테이블과 그 위에 올려 둘 것들이 무엇이 될 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