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택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큐레이터이자 연구자이다. 영국 왕립 예술 대학(Royal College of Art)에서 Curating Contemporary Art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지금은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박사 과정 중에 있다. 일민미술관, PLATFORM-L Contemporart Art Center 등의 기관에서 전시를 기획하였고, 독립 큐레이터로서 INTERACTION SEOUL이라는 전시 기획 플랫폼을 독자적으로 운영키도 했다. 최근에는 현대자동차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 ZER01NE 크리에이터 스튜디오의 팀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는 동시대성과 한국의 큐레이팅 실천, 그리고 미술의 사회적 역할 및 그 형성에 관심을 두고 전시와 텍스트를 생산하고 있다.

장진택: 초창기 작업부터 이야기해보자. 프랑스에 꽤나 오래 머무르며 작업을 시작했다.

허우중: 2017년에 한국에 돌아오기 전까지, 프랑스에 거주하면서 진행했던 작업들은 주로 불안이라는 감정에 초점을 두었다. 그건 타국이라는 장소에서 겪는 소통의 부재 때문이었고, 여기서 느끼는 갈증을 한국에서 일어나는 여러 뉴스를 찾아 보며 해소하려고 했다. 인터넷을 통해 조각조각 나뉘어져 있는 한국 뉴스를 단편적으로 접하면서 그 조각들을 이어 맞추는 작업을 했었다.

장진택: 초기작에서는 하나의 사건을 구성하는 형태로 이어 맞추기를 진행했던 것 같다. 뉴스의 여러 이미지를 레퍼런스로 차용하고, 그로부터 하나의 완결된 형태 또는 서사를 생산하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의 작업 이후에는 콜라주 형식이 등장한다.

허우중: 한국의 일들을 단편적인 사실로 접했고, 그것의 총합은 거의 추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인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의 작업 또한 구체적 이미지들이 콜라주 형식으로 하나의 화면 안에 붙어있지만, 바라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 화면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는 형상에 가까웠다. 나 또한 무슨 이야기인지 모를 수밖에 없는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다. 실제로 그게 한국의 소식을 찾아보며 내가 받은 인상이었기 때문이다.

장진택: 2017년도에 경기도미술관에서 《소셜 픽션》이라는 전시를 열었다. “픽션”이라는 단어를 전시 제목에 사용했고 그와 함께 삽화적 이미지를 전시했다. 본인의 작업에 있어서 픽션과 삽화라는 두 요소는 어떤 의미가 있나?

허우중: 픽션과 같이 하나의 서사로 읽힐만한 이미지를 그렸지만, 관객에게 실제로 사회적 이슈를 전달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내가 받은 ‘알 수 없다'는 인상 자체를 남기고 싶었고, 관객 또한 ‘알 수 없다'는 인상을 받기를 원했다. 삽화적 이미지는 예전부터 만화나 판화 이미지를 굉장히 좋아했기 때문에 사용했다. 만화 중에서도 특히 흑백만화를 좋아했는데, 흑과 백 사이의 강한 색의 대비가 좋았기 때문이다.

장진택: 2017년까지의 작업을 일련의 ‘콜라주 시리즈’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콜라주 형식의 작업에서는, 그것이 관람자의 입장과 창작자 본인의 입장 사이의 큰 틈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그건 작업이 특정 사건 자체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틀을 일정한 틈이나 거리를 둔 상태에서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상황을 말한다.

허우중: 이전의 작업에서는 멀리서 일어난 사회적 이슈를 이미지 생산의 시발점으로 삼았는데, 그렇다고 하나의 이슈 혹은 사건에 관해 오랜 기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이슈를 가볍게 소비하듯이 이미지를 다뤘던 것이다. 사건 자체보다는 이미지 콜라주를 구성하는 순간이나 단순히 하나의 이미지 또는 화면을 만들어내는 것에 더 흥미가 있었다.

장진택: 배경이 지워진 형태, 즉 콜라주 형식이 조금 더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작품도 있다. 특히 <조각모음>(2017) 작업에서 각각의 도상을 분산해 배치한 점이 눈에 띈다. 무한정의 벽 위에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자유롭게 펼쳐놓고자 했을 때, 오히려 그 안에서 우연히 여러 패턴을 만들게 된다거나 주관적인 기획으로 개별 사건들이 연결되는 경험이 있었을 것 같다.

허우중: 귀국 후, 2017년 말에 〈조각모음〉을 제작했다. 머릿속에 남아있는 잔상이나 기억의 이미지를 벽에 규칙 없이 풀어놓으면 나 스스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시 좋아하는 오브제, 드로잉, 낙서들을 한 벽에 늘어놓는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장진택: 비슷한 시기에 제작한 또 다른 작업 〈관념의 탑〉(2017)은 구상의 형태를 가진 유화인데,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미지의 변형을 암시하는 듯하다. 콜라주 시리즈의 마지막이면서도, 그 이후의 본격적인 추상 작업을 시작하기 위한 단초가 아니었을까. 이 작업은 일종의 ‘서사 없음'을 구상으로 보여주는 양상을 보인다. 초기에는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초점을 뒀다면, 그것을 결정한 다음 본격적으로 백색 추상을 시작한다. 백색의 의미부터 이야기해 보자.

허우중: 일반적으로 백색이라는 것은 ‘공백’, ‘여백’, ‘비어있음’, ‘칠해져 있지 않음’, ‘개입되어 있지 않음’ 등의 의미를 연상시킨다. 나는 백색이 가지는 이런 의미를 다시 생각하고 싶었다. 또한, 이 지점에서 ‘보이지 않는다는 건 무엇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장진택: 백색의 ‘없음'과 대비하는 ‘있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도 떠오른다. 백색은 ‘없음’을 표현한다면, 흑색은 보통 ‘있음'을 표현한다. 이 백색 추상 작업에서는 흑색을 ‘없음’을 위해 사용하면서 흑백에 대한 일반적 인식을 역전시킨다.

허우중: 백색 추상 작업을 보았을 때, 관람자로서는 화면에 표현된 얇은 선에 가장 먼저 눈이 가는 것 같다. 그걸 가까이서 보면, 백색 또한 ‘칠해져 있다’는 것이 보일 것이다. 흑색의 선과 백색 면은 결국에는 모두 눈에 보이는 것, 즉 가시적이라는 것이다.

장진택: 선을 통해서 면을 보여준다는 것, 그건 그림자를 통해 사람의 형체를 가늠하는 것과 유사하게 들린다.

허우중: 그렇다. 작업의 형체를 그려낼 때 명암이 주요한 역할을 했다. 점점 더 단순화된 표현을 지향하면서 명암에 대한 관심이 선으로 이어졌다.

장진택: 결국 이 백색 추상은 가시성과 비가시성의 의미 역전을 통해 가시성에 대해 재고토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 같다.

허우중: 작업은 결국 내가 하고 있던 생각을 수면 위로 보여주는 하나의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불안한 사물들》(2019,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전에서는 공간을 부조 작업의 형태로 전환하는 작업을 했는데, 그때의 작업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장진택: 작품의 제목들을 보면 관객에게 매우 친절하게 작업의 정보를 제공한다고 느껴진다. 그것은 작품의 제목에서 작품의 내용에 관한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지시가 일어나기 때문인데, 가장 최근의 개인전 《잔상의 깊이》(2020, 송은 아트큐브)에서 소개한 작업들에서는 그것이 더욱 극대화된다. 이제는 화면의 아래 배경 부분에 색을 칠한다. 이로써 백색으로 칠한 면이 도상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한층 명확하게 드러낸다.

허우중: 그림은 결국 가시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계기가 되었다. 이전 작업에서 ‘비가시적인 것’이나 ‘없음'을 재고했다면, 최근의 작업은 단지 그림을 통해 내 생각을 전달하고 싶다는 전제를 두고 진행한 것이다. 비가시적인 것을 은유하는 백색도 결국 가시적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전시에서는 색을 배경의 의미로 쓰면서, 그 내용을 보다 전면적으로 드러나게 했던 것이다.

장진택: 표현에 있어서 구상과 추상이라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영역들을 넘나들어 왔다. 가시성과 비가시성 사이의 관계나 상대적 조건들에 집중하다 보니, 구상이기도 혹은 추상이기도 한 독특한 형상의 이미지를 구성해 왔던 것 같다.

허우중: 그렇다. 이전에는 존재의 불확실성에 기반했다면, 이제는 존재에 대한 인식의 불확실성으로 이야기의 초점을 옮겼다. 그로 인해, 구상으로도 추상으로도 볼 수 있는 이미지를 출현시킨 것 같다.

장진택: 작가의 작업은 존재의 있음과 없음 그리고 이를 상징하는 대상들의 여러 형상적 관계 등과 관련해, 어떤 일반적 기준을 우리로 하여금 재고토록 한다. 특히 그것은 무엇인가를 역의 방식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앞으로도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혹은 ‘있음'과 ‘없음'의 관계를 재편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를 계속해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