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성아는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에 관한 글쓰기와 독립 큐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으며, 온라인구독플랫폼 BGA(Background Artworks)의 공동 운영자이기도 하다. 동세대 작가와의 작업을 다양한 방식으로 확장할 수 있는 지점에 대한 고민과 물리적인 전시의 형태 혹은 글과 하나의 컨텐츠를 구현하고자 한다. 문학을 참조하여 전시 주제를 풀어나가는 것에 주목하고, 동세대가 습득하고 풀어내는 회화와 조각은 무엇인지 등 장르에 대한 지속적인 형식적 접근을 통해 다양한 갈래로 전시를 구현하고자 한다. 《휘슬러(The Whistler)》(Galerie ERD, 2020), BGA 오프라인 쇼케이스 《PHYSICAL》(갤러리 팩토리2, 2020), 국동완 개인전 《나는 셋 아니 넷 아니 다섯》(플레이스막2, 2020), 조혜진 개인전 《옆에서 본 모양: 참조의 기술》(d/p, 2019), 《사물들: 조각적 시도》(두산 갤러리, 2017), 이희준 개인전 《Interior nor Exterior: Prototype》(기고자, 2016) 등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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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는 시공간이 한 곳에 존재하는 지점과 우주의 공간이 축소되지 않은 채 들어 있는 공간인 “알레프(The Aleph)”를 장소에 대한 어떤 특별함으로 이야기했다. 2000년대 초반에 시간성과 장소성에 대한 애착이 강하게 담긴 전명은의 첫 번째 기록의 사진 모음은 ‘첫 번째 알파벳’이자 ‘처음’을 의미하는 헤브라이어인 “알레프”인 보르헤스가 이야기하는 장소와 시간을 관통한다. 이국적인 정서를 담고 있는 사물들과 오래전부터 수집한 낡은 골동품들, 기능이 어디서 시작하고 어디서 끝나는지 모를 그 무엇으로도 사용되지 않는 사물들 그리고 나의 자산이라고 부를 전명은의 사물들은 지금까지 그와 함께 해온 시간이자 사적인 역사의 한 단편과 뿌리라 할 수 있다. 그가 알지 못했던 곳에서부터 이어져 온 사물들은 이름 없는 곳에서 전개되었던 사건들과 누군가의 흔적과 함께 여러 차원을 이동해왔다. 단편적으로 세월의 흔적을 안고 있는 사물을 수집하기 시작한 작가는 대상이 일시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장소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전명은은 불현듯, 2000년 어느 날 자신이 수집한 사물들을 배낭에 가득 담아 국내 여행을 한다. 겹겹의 시간과 장소에서 수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각각의 사물에게 특별한 장소와 시간을 부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는 장소를 분류하는 체계적인 방식을 확정 짓지 못했을지 모르나, 장소들의 지리적 위치에 따라 분류하기 시작하면서 여러 장소들을 거쳐 이동한다. 바닷가의 해변, 산등성이, 바위, 튀어나온 지형, 합류점, 강, 억새풀 어귀 어딘가에 사물들을 세부적으로 배열하고 위치시키는 장소의 기록은 그에게 기억의 장소를 사물을 통해 묘사하고 추억을 회상하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을 테다. 사물들을 나란히 일렬로 배열해 놓고 여러 장소에 세워둔 풍경은 사물의 시선에서 바라본 풍경의 좌표로 설정되어 대상의 시선을 가장 기초적으로 빌려오는 사진가의 태도가 엿보인다. 여기서 장소를 기록하기 위해 일반적인 방식으로 이끄는 그의 시선은 중립적인 묘사로 이어지는데, 이때의 사진은 연속적이고 사실주의적인 성격을 뚜렷하게 드러낸다.
그의 초기 사진은 장소를 이동하면서 장소와 시간을 명확하게 사진 속에 담아내므로 대상에 대한 연속성을 보여주었다. 사진 바깥에서 관망하는 이의 시선을 의식하듯이 주고받는 시선에 대해 고민했던 흔적들이 초기 사진에는 거칠게 드러난다. 반면에, 어느 한 천문가의 망원경을 통해 바라본 대상을 사진으로 남긴 ‘사진은 학자의 망막’ 〈송재원, 보름달 직전의 달〉(2012)과 2016년, 전명은이 시각장애인 어르신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의 말들을 점자와 텍스트, 이미지로 남긴 기록 〈금곡의 기억〉(2016), 그리고 조각가였던 아버지의 시선을 이해하기 위한 〈누워있는 조각가의 시간〉(2017) 연작은 타인의 행동과 생각에 다다르고자 했던 전명은이 갖고 있는 더욱 섬세하게 직조된 시선의 메아리이다. 다시 거꾸로 올라가, 섬세했던 근작들과 달리 작가의 사물들을 한 다발 들고 여행했던 초기 연작들은 자기 자신을 향한 태도에 초점을 두는 것과 동시에 그가 보여준 장소 특정적인 선택들에 대상을 빌어 시선을 타자화 하기도 한다.
카메라 렌즈를 통해 이동하는 작가의 시선과 사물이 놓이는 방향과 각도에 따라 렌즈를 통과하는 풍경은 여러 장소를 여행하는 유목적 성격을 띤 사물의 시선으로 행해질 수 있다. 장소를 이동하는 작가가 배낭을 풀고 짐을 챙기는 반복적인 행위는 유목과 정착이라는 일시적 귀속에 대한 작가 주체와 장소성의 관계로 귀결된다. 지리학자 팀 크레스웰(Tim Cresswell)은 장소를 의미와 애착이 부여된 특정한 위치 즉, 위치, 현장, 장소감이 결합한 의미 있는 ‘장소(site)’라 언급하면서 장소가 갖고 있는 물리적인 측면과 유목과 정착의 공존에 대해 지적한다. 이와 같이, 전명은은 사물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이 속할 장소를 이동하면서 발견해 나가가고, 대상에 대한 애정을 통해 사물과 장소를 향수적으로 다룸으로써 시공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시선의 감각을 제시해왔다. 이러한 감각은 작가가 한 장소에서 다음 또 한 장소를 차지하는 것과 별개로 그곳에 존재하는 절대적 공간과 시간이 축적되고 움직이는 흐름을 포착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전명은의 어느 인터뷰에서 “대상에 대한 존경심”과 “다른 세계의 시선”에 대한 감각들을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그가 알지 못했던 세계에 대한 다른 이들의 감각과 태도를 조각가의 손끝이 지나간 대상의 강렬한 물성의 표면과 덩어리로 정착했던 〈누워있는 조각가의 시간〉 연작으로 풀어냈다면, 〈다른 시를 읽는 아이 #2〉(2015)는 자신이 볼 수 없고 감각할 수 없는 시각장애인의 시선을 신체의 일부를 통해 시간을 담아낸다. 이 둘의 차이는 조각가와 시각장애인의 시선에 대해 하나의 오브제를 향한 감춰진 신체와 제스처를 위한 노출된 신체의 양면적인 태도에 기인한다. 전명은이 포착한 다른 세계의 시선은 그 무게가 안고 있는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남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다시 보르헤스로 돌아가자면, 그가 소설들의 착상과 이미지들을 상상했던 방식이 시력을 상실하면서 집필했던 시편 『창조자(El Hacedor)』(1960)를 통해 기록하지 못하는 또 다른 글쓰기이자 독백으로 세계를 다르게 이해하고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태도를 쫓는 것과 유사한 감각들일 것이다. 전명은이 담고자 했던 시선의 감각들은 “상(像)들만의 거짓 공간이 다하고 시작하는 침투할 길 없는 거울”이라고 보르헤스가 썼던 한 시 구절에서처럼, 자신이 디디고 만질 수 있는 현실이 ‘보는 것’에서 멀어져 버린 공포에 대한 다른 세계의 감정을 공유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가 침범하는 다른 시선에 덧붙여 지속되는 시간에 관한 은유는 〈송재원, 보름달 직전의 달〉(2012)과 〈안내인〉(2017), 〈글라이더〉(2019) 연작을 통해 확장된다. 전명은이 함께 이야기를 주고받은 일곱 명의 천문가들이 보내는 어둠의 시간은 14인치 스트링 돕 반사 망원경 렌즈와 천문가의 망막이 직접적인 신체의 시선으로 개입되어, 사진 속 달의 표면이라는 우주적인 시공간으로 확장됨과 동시에, 망원경이라는 보기 위한 도구, 관측하기 위한 도구 형태의 사물을 전면에 드러내기도 한다. 전명은이 촬영한 어둠 속 망원경은 사물 그 자체로서 운동감 있는 형태를 띠며 유물론적인 기록처럼 물질 그 자체의 목소리를 내는 듯하나, 1/3쯤 보이는 어둠 속 달의 표면은 매우 시적이다. 상반되는 이 둘의 사진 이미지를 통해 작가가 바라보는 대상에 대한 사물화와 은유는 대상이 갖고 있는 형태 즉, 선에 주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대비가 강한 새의 형상을 띠고 있는 뾰족한 나뭇가지의 가시를 접사한 〈안내인〉 연작과 링을 쌔게 움켜쥐고 있는 체조 선수의 묵직한 손의 모양(〈글라이더-링 VII〉(2019)에서도 그 예민함이 드러난다.
흑백의 대비로 대상이 안고 있는 본연의 물성에서 포착한 촉각적인 감각과 힘의 방향, 운동감 그리고 형상에 대한 전명은의 관찰은 지금까지 다른 이의 시선을 통해 가까이 있고 멀리 있는 것에 대한 바라보기였다면, 근래에 진행 중인 작업들은 그 시선이 자기 자신으로 돌아와 개인이 부여잡고 있는 작은 서사들의 단편들을 찾아나가는 여정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가 초기에 수집해온 사물들을 촬영하듯이, 떼 묻은 시간이 벤 사물들에 대한 기록이 과연 어느 지점에 초점을 두고 작가의 피사체에 담아낼지 기대해 본다. 이는 천문가, 시각장애인, 조각가, 체조 선수의 시선도 아닌 온전히 자기 자신이 만들어낸 개인의 역사에 대한 시선을 어떻게 감출지 혹은 드러낼지, 전명은이 수집하고 존재했던 지난날들의 애정하는 사물들을 통해 무엇을 꿈꿨는지 사물의 다음이 궁금해진다. 어쩌면 실제와 꿈들이 무수히 교차했던 지극히 사적인 시간들의 사물들이 우주의 시공간을 압축한 한 장의 천문 사진과 동일한 감각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설령 허구일지라도.